
The Full Story
About 임시정부자금
독립운동자금. 어떻게 모였는가?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자유를 위해 한민족은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기금 모금을 위 제4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인구세와 애국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1919년 6월 15일 재무총장 최재형 명의로 징세령을 내렸는데, 징세에 대한 명칭은 ‘인구세’라고 하였다. 20세 이상 모든 한국민들은 1년에 금화 1원을 인구세로 내게 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에서는 항상적인 재정확보를 위해, 국내외 동포들로부터 ‘애국금’이라는 명목으로 독립의연금을 모집하였다. 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미주지역에서는 중앙총회가 미주, 멕시코에서 15만 달러 수합을 계획하고 애국금 모집을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미주지역 외에 중국지역과 국내 각지에도 애국금수합위원을 임명하여 ‘애국금’을 거두게 하였다. 중국 상하이에 4명, 하얼빈과 펑텐에 각각 2명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국내에는 강원도를 제외한 평안도에 66명을 비롯하여 각도 총 126명의 애국금수합위원을 두어 애국금을 거두었다.


고된 노동으로 독립을 위한
자금 마련-대한인국민회
1920년 미주 지역에는 약 1만명에 달하는 교민들이 살고 있었고 '대한인국민회' 같은 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속적으로 모금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독립운동자금은 8만 5천 달러. 이 금액은 오늘날의 가치로 18억원에 해당한다.
하와이에서 결성된 '대조선국민군단'은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며 약 2만2천 달러를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에 지원하였다. 대한부인구제회는 1920년에서 1930년 기간 동안 만주 일대 독립군 세력과 임시정부에 약 20만 달러를 후원하였다. 북미대한인국민회는 1940년대 충칭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4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축하합니다.
독립운동자금 사만원을 획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