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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싱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

자싱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

 윤봉길 의거 이후 추푸청의 도움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은 자싱 임시정부 거주지에 피신하였다.  이들은 김구보다 먼저 자싱에 도착하여 김구가 피신했던 매만가(梅灣街) 76호와 약 300m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김구와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1935년까지 자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철과 조소앙이 항저우에 정부의 청사를 마련하고 정부를 유지해 나갔지만, 주요 인사들은 자싱과 난징에 흩어져 있었다. 자싱은 임시정부 독립운동의 또 하나의 거점이 되었다.

 

 1935년 장쑤성 잔장으로 이동하기까지 자싱 일휘교 17호에서 임시정부의 이동녕, 엄항섭, 김의한과 김구 가족은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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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피난처 건물은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졌다. 건물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2층 건물로 4칸의 방과 마당이 있으며, 총 부지면적은 904㎡이며, 전시 면적은 332.5㎡이다.

 

 1995년 자싱시가 자체적으로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전시관을 개관했다.  1층 전시는 총 5개 주제로 구성되었다. 2층은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을 재현해 놓았다.

 

 휴일과 국경일에 관계없이 매일 전시관을 개방하고 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점심시간은 11시 30분에서 오후 1시 30분까지이다.

이 건물은 역시 김구 피난처와 마찬가지로 2000년 5월과 2005년 3월 각각 자싱시문물보호단위와 저장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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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독립운동자금을 획득하라.

​자싱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로 피신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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