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파리위원부 청사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할 목적으로 프랑스 파리에 설 치한 외교부서.

임시정부는 김규식을 외무총장으로 지명하였고, 평화회의 대한민국위원 겸 주파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5월 10일 그는 독립공고서를 강화회의에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과 개별접촉하여 한국의 입장을 설명, 지원을 호소하였다.
1920년 7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녈 대회(만국사회당 대회)에서 파리위원부 부위원장 이관용과 조소앙을 대표로 참여시켜 한국독립승인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20년 8월에는 이관용이 위원장대리, 황기환이 서기장이 되어 파리위원부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10월 10일에는 황기환이 외교 및 선전활동을 전담하였다《자유한국》 등의 책자를 영문·불문으로 인쇄하여 각지에 배포하는 한편, 한국에 관한 기사를 181종의 유럽 신문들에 517회에 결쳐 게재시키는 등 눈부신 홍보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영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맡을 대영제국한국친우회 결성되었다.
파리위원부는 1919년부터 1923년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외교 및 선전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유럽 각국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여, 한국이 일제의 압제에 억압받고 있는 실상을 널리 알리는 한편, 유럽에서 한국의 외교적 지위를 인정받도록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