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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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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당시 경교장의 모습
(조선과 건축. 1938년 8월호)

​전시관으로 복원된 경교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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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마지막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최창학소유의 별장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던 김구 선생님이 1945년 11월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부터 1949년 생애를 마칠 때까지 생활하던 사저 겸 집무실이었다. 당시 그 일대의 명칭이 다케조에마치[죽첨정(竹添町)]여서 건물 이름을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김구가 경교장이라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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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교장은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후 사실상 청사로 사용된 곳이며,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가 수차례 개최되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주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또한 김구가 약 4년간(1945.11.23.~1949.6.26.)거주하면서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애쓰다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대표단과 환영인사들. 1948.5.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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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들뿐만 아니라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였다.

 

 특히 임시정부의 공관으로 상당 기간 활동본부 구실을 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애썼다.

 

 이곳 경교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엄항섭 · 조완구 · 조소앙 · 조성환 등이 회의를 주재하였다. 그리고 자주적 통일운동이 본격화되기까지 광복 후 이곳에 많은 인사들이 집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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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시해된 뒤 국민장을 거행할 때, 당시 거족적인 애도 인파가 몰린 명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완전독립과 통일지향의 역사적인 영광과 시련이 교차된 경교장은 주인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1968년 삼성재단이 매입하여 고려병원(1995년 강북삼성병원으로 개칭)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경교장은 복원공사 후 2013년 3월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경교장 [서울 京橋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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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일지 민족국가 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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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Z. 독립운동자금을 획득하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역할을 하였으며 국무회의가 개최되기도 하고, 김구 선생님의 거처로 쓰이기도 한 곳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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