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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학교 전경 옛 사진-독립기념관
인성학교는 1916년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 2세들을 교육하기 위해 임시정부가 수립한 교육기관이다. 초대 교장은 여운형이었으며, 학생 수는 임시정부 수립 이전에는 10명 미만이었으나 이후에는 40~50명에 달했다. 인성학교는 한국어 한국사를 중심으로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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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인성학교의 교육 목표나 내용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육정책이 기반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교육을 방침으로 삼고 지·덕·체를 갖춘 인재양성을 중시했다. 교장과 교사는 선우혁·여운형·김태연·손정도·여운홍·안창호·이유필·조상섭·김두봉 등 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교민단장과 간부를 지낸 인물들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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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학교의 교과내용을 살펴보면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보통학교과정을 기준으로 하였고 민족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교과목도 한국어·한국사·한국지리·역사 등에 치중하였고 일본어는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 후에 교과목을 늘려서 국어·국사·본국지리·한문·산술·이과(理科)·수공(手工) 외에 3·4년 급(級)에는 중국어와 영어가 추가되었다. 학생 수는 1916년도 개교 당시에는 4명이었지만, 점차 학급수가 늘어났고 유치원이 증설되면서 1920년대 후반에는 50~70명 정도를 유지했다.

제6회 인성학교 졸업사진

인성학교 졸업증서
인성학교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 이후에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11월 폐교됐다. 1935년 11월 10일부터 일본영사관에 의하여 일본국정교과서에 의한 일본어교육을 실시할 것을 강압적으로 명령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당시 인성학교 교장 선우혁은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1935년 11월 11일자로 무기휴학을 선언하여 사실상 폐교에 이르렀다.
현재 인성학교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지하철 역사 및 커피숍으로 변모됐다.
인성학교는 상해교민들의 교육열과 일제에 대항하여 2세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민족교육을 독려한 중심적 임시정부의 교육기관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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