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간섭과 재정의 부족으로 인해 발간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에 대한 희망과 애국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신문 발간을 이어나갔다. 이 신문은 국내외에 전달되어 독립운동의 기폭제이자 매개체로 작용하여 의의가 있다.
1932년 이봉창의거와 윤봉길 의거로 임정 요인들이 피신했을 때 일시 휴간했다가 1933년 다시 복간, 이후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겼을 때는 한문으로 편집하고 1943년 7월 20일까지 7호가 발행되었다.
독립신문은 그외 《한일관계사료》,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이순신전》 등을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