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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


항저우에서 3년여 간의 임시정부 임정 요인들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그 다음 일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은 1933년 5월 장제스와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게 되고 11월 임시의정원에서는 민족문제의 해결은 군사행동에 있을 것이라고 선언, 중장기적으로 장교 양성과 군사교육 강화, 무기 및 군비 확충을 준비했다.

1934년에는 외교대표부 성격을 띤 ‘외무부 행서’를 국내외 요충지역에 설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력을 강화하고 재무부 포고를 통해 미주 한인사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독려하는 등 독립운동을 진행해 나간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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