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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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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1932년부터 1935년까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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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 사건 이후 임시정부는 항저우로 이전되었다.

 1932년 5월에서 1935년 11월까지 저장성 항저우를 주요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국무원과 하원은 청사 주변 서호에서 열렸다. 청사는 2층의 작은 건축물이다.

 항저우에서 3년여 간의 임시정부 임정 요인들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그 다음 일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은 1933년 5월 장제스와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게 되고 11월 임시의정원에서는 민족문제의 해결은 군사행동에 있을 것이라고 선언, 중장기적으로 장교 양성과 군사교육 강화, 무기 및 군비 확충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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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에는 외교대표부 성격을 띤 ‘외무부 행서’를 국내외 요충지역에 설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력을 강화하고 재무부 포고를 통해 미주 한인사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독려하는 등 독립운동을 진행해 나간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MISSION.독립운동자금을 획득하라. 

항저우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행한 업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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